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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절과 유자식 상팔자

온주신문 | 기사입력 2024/01/17 [11:22]

예절과 유자식 상팔자

온주신문 | 입력 : 2024/01/17 [11:22]

예절(禮節)에는 우리 조상의 슬기가 담겨 있다. 예절은 예의와 범절의 합성어로 에티켓이나 매너(manner)와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으나, 엄격히 말하자면 에티켓은 예의와 매너는 범절과 같은 뜻으로 보아야 한다. 에티켓이 형식이라면 매너는 그를 일상 적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윗사람에게 인사하는 그 자체는 에티켓이지만 공손하게 하느냐 경망스럽게 하느냐는 매너의 문제이기 때문에 예절은 에티켓과 매너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또 예절에는 향기가 있다. 아주 오랜 환인시대에는 국민은 성실하고 서로 믿으며 어른을 공경하고 겸손하며 화목했다고 한다.

 

공자는 우리나라를 동쪽에 있는 예절의 나라이며 군자(君子)가 사는 땅이라고 하였고 조선에 가서 살고 싶어 하였다. 우리나라 근대 예절은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한국의 생활문화가 중국학자에 의해 체계화되고 그것이 역수입되어 우리나라 예학(禮學)의 기반이 된 것으로 예절의 뿌리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생활문화(生活文化)였다.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하며 면면히 이어온 예절(禮節)에는 인간 존중의 실현과 인륜의 기본질서 확립 그리고 가족의 화목과 이웃 공동체의 화합정신이 들어있다.

 

예절(禮節)에는 따뜻한 마음이 있고, 밝은 마음, 성실한 마음이 있다. 나보다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따뜻한 감성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이는 모두 예절 정신에 담긴 풍요로운 정감에서 나오는 향기이다. 그러므로 예절을 바르게 지키는 사람은 아름답게 보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추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절의 시초는 몸을 바르게 하고 상냥한 인사와 말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사회는 예절로부터 시작된다. 어려서부터 예절에 대한 철저한 교육과 사회의 지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예절을 지키지 않는 것이 범죄행위는 아니지만, 예절을 지키지 않으면 인간관계가 깨지기 쉽다.

 

예절은 인생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하겠다.

제 밥그릇은 제가 가지고 태어난다. 예전 예닐곱씩 낳던 자식을 보며 했던 말이다. 아마 아이를 제한 없이 낳던 시절, 그러잖아도 먹고살기 힘든 시절에 할 수 있었던 자구적인 위로였을 것이다. 흔히 자식(子息)은 부부의 가교라고 한다.

 

남남끼리 만나서 서로 마음 맞춰 살아야 하는 부부 생활은 여러모로 녹록치가 않다. 40~50년 결혼 생활을 영위하는 동안 일어나는 우여곡절들, 하지만 쉽게 결혼을 깨뜨릴 수 없는 이유가 자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식을 키우고 또 그들이 어른이 돼 독립할 때까지 부모로서 도리와 의무, 그렇기에 개인의 감정에 치우칠 수 없는 절대적인 이유가 부부 사이에 낳은 자식 때문이라는 것에 우리 부모 세대는 물론 지금도 많은 부부들이 공감할 것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자식을 거의 예닐곱 명, 많게는 열 명 넘게까지도 낳았다. 많은 자식이 곧 재산이던 시절이었다. 키우는 것에 그다지 막막함도 느끼지 않았던 모양이다. 제 밥그릇은 챙겨 나왔으리라고 믿었던 것일까.

 

지난 1970·1980년대엔 좁은 땅덩어리에 인구과잉 우려로 정부에서 산아제한을 했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는 어찌 보면 혁신이었다. 부부간의 일에 나라가 개입한 거의 첫 번째 정책이었을 것이다. 국민들은 정부 시책을 어기면 큰일 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너나 나나 두 명에 그쳤다. 남아선호(男兒選好) 사상이 뿌리 깊은 한국인은 아들딸 가려 낳지 못함에 아쉬움이 컸지만 울며 겨자 먹을 수밖에 없었다. 세 명 이상 낳는 사람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미개인(未開人) 취급을 받기까지 했으니 눈치도 보였을 것이다.

 

젊은 부부에게 자녀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50% 정도만 필요하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가족의 개념이 희박해져가고 있는 현실에서 굳이 자식을 낳아 불확실한 미래에 희생을 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일 것이다. 또한 낳더라도 한 명이다 보니 자식은 신줏단지가 됐다. 그들에게 제 밥그릇은 제가 챙겨 나온다는 검증(檢證)되지 않은 이야기는 웃자고 하는 얘깃거리도 못 된다.

 

정성껏 돌보고 특별한 교육을 시켜서 아이의 빛나는 인생을 만드는 것은 부부에게 숙제이고 드러나는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자식에게 들이는 정성도 정성이지만 대한민국 부모들의 지나친 교육열의 반증과도 무관할 수 없는 이야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고, 거기에 아이 양육문제는 비단 한 가정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적인 고민거리로 부상했다. 아이 한 명 키우는 데 얼마의 돈이 필요하다는 구체적인 금액도 계산되고 있다. 물론 자식들의 부모 부양도 옛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결국, 자신의 인생은 철저하게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대부분의 부모에게 삶의 이유이자 의미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겐 별 설득력 없는 얘기일지 모른다. 오늘만 있고 내일은 없는 듯이 사는 세대인데 자식은 자신들의 불확실한 미래에 가장 확실한 두려움의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자식은 키우는 데 공도 들지만, 때론 삶 자체를 좌지우지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자식으로 인해 기쁘기도 하지만 어쩌다 자식에게 불행한 일이 닥쳤을 때 겪는 고통은 무엇보다 크기 때문에 지레 겁을 먹는 것이리라. 그래서 오히려 자식이 없는 사람이 상팔자라고 했을 것이다. 드디어 무자식이 상팔자인 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자식이 매개가 돼 더욱 끈끈했던 가족은 그 자식(子息)을 선택하지 않으므로 오히려 쉽게 해체되기도 하니 인류사(人類史)의 불행한 역습(逆襲)이다.

 

정말 무자식(無子息)이 상팔자일까. 나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 한 일 중 가장 뿌듯한 일이 사랑하는 아들딸을 낳아 키웠다는 것이다. 삶이 힘들지만, 그래도 유자식(有子息) 상팔자(上八字)이다.

 

시인수필가 김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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